배설

아무 느낌 없다가 갑자기 터지는...

루프룩 2017. 11. 15. 20:44

 

 

 

그날은 정말 한계치에 음식을 처 넣은 날이었다.

 

배가 너무 불러서 숨쉬기조차 힘든 그런 포만감을 가지고 전철을 탔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그 공간은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탔다.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에 각자의 사람들을 담거나 핸드폰을 바라본다. 그 속에서 나 역시 혼자는 아니었기에 옆의 같이 있는 일행과 가끔 대화를 하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그 전철 안에서 쉬지 않고 대화들은 목적지 없이 퍼져가지만 정확한 음성의 기억은 귀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역처럼 한 번의 울림과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다 건대입구쯤에서 러시아 여자 일행이 타고 자주 접하지 않는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쳐다보기에도 무서운 흑인들도 타서 대화하기 시작하고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허름한 차림의 할머니도 조선족 말투 특유의 빠르고 센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국가의 언어가 내 귀속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숨쉬기조차 힘든 포만감으로 빨리 집에 도착하길 바라는 나의 마음은 짜증이 나고 두통이 시작됐다. 왠지 모르게 자의적으로 갇혀 있는 이 공간이 매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불편한 마음과 소음으로 칭하고 싶은 음성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어서 도착하고 싶은 생각만이 가득차 일행과의 대화도 단절되어 음악이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혼자만의 생각 속에 깊어지는 생각의 꼬리는 뿌리를 내려 과거의 기억마저 끄집어 내버렸다.

 

사실 난 이 경험이 처음이 아녔다.

 

과거에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내 상황을 말하고 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외국인 무리들이 주변에서 자기들끼리 신나 소음에 가까운 대화를 하고 있었고 옆에서 웬 아줌마가 사투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의 마음은 불편함은 없었고 머리가 아프지도 않았다. 그저 내 상황이 재밌다고 생각되었으며 핸드폰 너머의 음성이 나긋하게 웃으면서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하는 소리만이 기억난다.

 

그 기억이 갑자기 머릿속에 재생되어 버렸다. 그리고 여태까지 그 기억에 아무 느낌 없었던 감정은 갑자기 터져버린 그리움으로 바뀌었다. 그때 그랬었지라는 그런 입가에 미소가 퍼지는 느낌이 아니라 후회와 같은 감정이다. 대부분의 이러한 고민이나 후회는 입안에 가두고 머릿속에서만 재생시키다 방안의 불이 꺼지면 같이 사라졌다. 문제는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가만히 숨만 쉬어도 흘러갈 시간인데 초침이 멈춰 버린다.

 

약간의 용기만 있었다면 지금의 이 시간은 없었다. 가만히 멈춰서 바라만 봤던 그 장면은 겨울이 된 지금의 차가움처럼 나를 또 차갑게 만들어 주고 있다. 기억은 더 뒤로 진행되어 처음의 미소를 발견하면 안 된다. 너와 헤어지던 그 더러운 기억처럼 그 날만 기억되어야 한다.

 

그래 오늘은 이 정도만 맥주 한잔하고 잠을 자면 끝난다.